2009년은 '9' 라는 마지막 숫자의 의미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떠나 보낸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 분, 2009년의 가슴아픈 이별들을 미리 예상한 듯 해가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떠나가셨다.
종교가 달라 단지 故 김수환 추기경님의 몇몇 파편적 사건들만 기억하고 있던 나에게 2009년 6월 '바보가 바보들에게' 란 추기경님의 수필집이 나에게로 찾아왔다. 처음에는 오디오북을 제작해야만 하는 '일'로써 이 책을 맞이 했지만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길수록 손끝에서부터 온몸으로 젖어드는 점성이 짙어져 갔다.
동양사회에서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상적인 시대가 있습니다. 바로 '요순' 시대 입니다. 그 시대에는 사람들이 법 없이도 잘 살았고, 법은 고사하고 백성들이 나라의 통치자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요 임금이 홀로 시골 마을에 가 보았습니다. 밭에서 노래를 부르며 일하고 있는 농부에게 넌지시 "당신은 우리나라 임금이 누군지 아시오?" 하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무심히 대답하기를 "우리야, 해 뜨면 집에서 나오고 해지면 집에서 들어가고,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 밥 먹고 사는데, 임금이고 뭐고 상관할 게 뭐 있소?" 하는 것입니다.
요 임금은 비로소 자신의 정치가 어느 정도 잘 되어가고 있음을 확인한 셈이 되어 흐뭇해 했습니다.
너무 엄격하고 복잡한 여러 가지 법률이 세상 사람들을 얽어매는것이 오늘의 세태라고 생각합니다. 법뿐이 아니라 내세워지는 여러가지 명분의 과잉, 미사여구의 과잉도 사람들을 싫증나게 하고, 가치관에 무감각해지게 하며, 불신풍조를 조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 이니 '정의' 니 '복지' 니 하는 말들이 남발될 때에 사람들은 허탈 속에서 사회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바보가 바보들에게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중에서]
요 임금은 비로소 자신의 정치가 어느 정도 잘 되어가고 있음을 확인한 셈이 되어 흐뭇해 했습니다.
너무 엄격하고 복잡한 여러 가지 법률이 세상 사람들을 얽어매는것이 오늘의 세태라고 생각합니다. 법뿐이 아니라 내세워지는 여러가지 명분의 과잉, 미사여구의 과잉도 사람들을 싫증나게 하고, 가치관에 무감각해지게 하며, 불신풍조를 조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 이니 '정의' 니 '복지' 니 하는 말들이 남발될 때에 사람들은 허탈 속에서 사회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바보가 바보들에게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중에서]
"이게 다 OOO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통치자의 이름은 '남 탓' 의 대표 명사가 될 만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정치인들은 국회체육관의 파이터가 되어서 싸움의 명분을 과잉된 미사여구로 정당화시키고 있다. 국민은 이들의 끊임없는 싸움을 지켜보다 못해 말리고 말리다 또 함께 싸우고 있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이러한 '격투 정치 트렌드' 에 우리 모두가 점점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순진함, 부드러움은 가장 생동하는 생명의 표현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부드럽고 약하고, 죽을 때는 단단하게 굳어집니다. 풀과 나무, 모든 것이 싹틀 때는 여리고 부드러우나 죽으면 메마르고 굳어집니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성질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가장 신선한 생명입니다." 옛 현인의 말씀입니다. 이른 바 권력이라는 것에도 이 부드러움의 생명력을 불어 넣어야 합니다. 조용히 인간적인 진실이 소통되어 나가는 사회를 상상해 봅니다.
[바보가 바보들에게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중에서]
[바보가 바보들에게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중에서]
'조용히 인간적인 진실이 소통되어 나가는 사회'.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진실로 상상하셨다. 하지만 정작 통치권력은 '제2의 아이폰 개발', '대한민국 랜드마크 조성' 만 열심히 상상하고 있는 듯 느껴져 안타깝기만 하다.
김수환 추기경님. 참 멀리 계신 분 같았다. 아니, 솔직히 나의 인생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느낀 그분은 집을 나서면 늘 집 앞 가까운 정자에 앉아 나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따뜻한 한마디를 전해주시는 푸근한 할아버지와 같았다.
"추기경님. 이제서야 당신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살아계실 때 보다 지금 더 가까이 계시는군요."
언제나 나에게서 큰 주제는 인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사회 전체가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서로 사랑하세요. - 故 김수환 추기경
[2009년 연출한 '바보가 바보들에게 오디오북'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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